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 김태희
안녕하세요. 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이자 개발 노동자로 일하며, 웹 접근성1과 오픈소스2 운동을 하는 김태희입니다. 갑자기 제 소개를 하는 이유는 이번 뉴스레터의 내용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평등가족부 포용기술3 전문가 간담회에 가다
당시 디지털포용법4 시행을 앞두고, 성평등가족부가 여성, 장애인을 비롯한 시민기술5네트워크의 단체들과 함께 간담회를 개최했습니다. 사실 디지털포용법을 읽어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과기부가 아니라, 성평등가족부에서 포용 기술 간담회를 연다니 단체들에도 의아한 일이었습니다.

간담회는 성평등가족부의 각계 부처장분들과 함께, 신입 공무원분들도 모두 참석하여 꽤 규모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성평등가족부의 딥페이크 잡는 AI 도입 등의 사업 내용 소개와 협업 논의는 매우 짧았습니다.
대부분은 각 단체가 하는 사업들을 성평등가족부 공무원분들에게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MYSC를 비롯한 임팩트 투자사와 임팩트 얼라이언스들은 비영리 단체와 사회적 경제 기업을 위한 투자와 사업이 겪는 현황과 어려움을 이야기했고요. 디지털 기술로 사회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시민들의 시빅해킹 6커뮤니티인 코드포코리아, 아이윈위나 위민후코드코리아 같은 여성 개발자 단체도 있었습니다. 지하철 환승 지도를 만드는 등 장애인 접근성 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무의도 참가했고요.
저는 FOSS for all7이라는 자유오픈소스 연합 단체의 정회원으로 문성준 운영위원님과 임주왕 정회원님과 함께 참가했습니다. 저는 A11yKR (접근성 코리아)라는 웹 접근성8 단체에도 속해 있어서, 회원분들의 의견도 함께 수렴해서 가져갔습니다.
모두의 문턱을 무의미하게
특히 무의의 홍윤희 대표님과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단법인입니다. 홍윤희 대표님은 여성으로서 이베이코리아 이사라는 높은 지위까지 올라간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반신을 쓰지 못해 휠체어를 타는 딸의 어머니가 되었을 때, 여성 장애인을 향한 차별은 예외 없이 찾아왔습니다.
대표님 따님의 휠체어는 아주 작은 문턱에 가로막혀 식당도 가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환승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에도 장애인석이 없어 돈이 있어도 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차별은 기업의 디지털 기술과도 떼놓을 수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여러 기업이 제공하는 지도 앱을 이용해서 손쉽게 길을 찾고 환승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은 이러한 지도를 보면서 이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지, 있으면 어디에 있고 어떻게 갈아탈 수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지하철역에 갇히거나, 결국 한참을 돌아서 내릴 수 있는 역이 나올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이는 장애인들이 리프트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려다 수없이 많은 사고와 사망에 이르는 참사로 이어져 왔습니다.

오랜 기간 정부와 공공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의는 2015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직접 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 지도를 만들며 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결국 이는 “모두의 지하철”이라는 민관협력 프로젝트로 이어져 교통약자 환승 안내표지를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본 프로젝트는 국내 최초로 교통약자(휠체어 이용자)가 직접 참여해 문제를 도출하고 개선안을 현장에 반영한 민관협력 공공디자인 사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발견한 문제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개선된 안내표지를 마련해 올해 10개 시범 역사에 적용할 예정이며, 2027년까지 서울교통공사 전 역사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왜 시민의 의견이 반영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가?
감동적인 투쟁과 승리의 역사입니다만. 근본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기술과 플랫폼의 민주주의에 뭔가 답답함을 느낍니다. 정부나 기업이나 시민과 소비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정부나 기업이나 소수자를 위해 막대한 비용이 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비용은 불필요한 행정 절차나 특정 기업의 이익 때문에 발생하는 때도 많습니다. 그런 때마다 변화는 시민의 노력에서 시작하고는 했습니다.
예를 들어 버스 정류장 노선도에 화살표를 붙이던 청년 이민호 씨를 기억하시나요? 이는 결국 모든 노선도에 화살표를 추가하게 되면서 제도화되었습니다. 사실 노선도는 어차피 인쇄해야 하는 것인데, 여기에 화살표를 추가하는 게 그렇게 막대한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로 인한 모두의 불편이야말로 막대한 비용이고 고통입니다.
우리는 장애인과 같은 약자와 시민, 소비자를 수동적인 대상으로 바라보고는 합니다. 하지만 무의나 화살표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모두가 정치인이고 주권자입니다. 내가 불편한 게 있어서 고치겠다고 의견을 내는데. 그게 비용이 얼마 되지 않더라도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는 관료제와 기업의 장벽 앞에 가로막혀 있는 것입니다.
오픈소스는 민주주의다
저는 A11yKR(접근성 코리아)의 회원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다가 접근성에 문제가 있는 사이트를 만나면 해당 단체나 업체들에 제보하고는 합니다. 이미지로 된 버튼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대체 텍스트9가 없다는 식의 간단한 것부터. 키보드로 사용할 수 없는 앱과 사이트. 청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에게는 자유로운 인터넷 세상도 열려 있지 않습니다.
제가 상세하게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까지 설명해서 하나하나 작성해서 메일을 보내더라도, 답장이 오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웹 접근성도 위에서 말한 교통 접근성의 사례와 다르지 않은 것이죠.
그런데 이와 전혀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모두에게 공유할 뿐만 아니라, 아무나 이바지할 수 있는 자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Free Open Source Software)가 그것입니다. 제가 속한 FOSS for all, 그러니까 “모두를 위한 자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라는 단체의 이름도 여기서 왔습니다.
자유 오픈소스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도 많지만, 안다고 생각하는 분조차도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Free는 단순히 무료라는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공개한다는 것만도 아닙니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많은 것들은 닫혀(Closed)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선도는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의견을 받아서 만들어질까요? 아마 서울교통공사나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기업의 어느 팀에서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 과정은 보안이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 아래 숨어 있습니다. 어떤 제안이 왜 무시되는지, 어떤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평범한 “외부인”인 시민과 소비자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시민이 세금을 내고, 소비자가 기업에 돈을 내는 주권자인데, 우리는 공공과 플랫폼에서 외부인 취급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픈소스 세상에서는 다릅니다. 오픈소스는 코드를 공개할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도 모두에게 공개되고,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마인크래프트를 하는 중학생도 전 세계인이 쓰는 프로그램의 버그를 고쳐서 올릴 수 있고요. 작은 오픈소스는 몇 시간, 며칠 만에 반영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약 지하철 노선도 앱이 오픈소스였다면 어땠을까요? 화살표를 붙이는 일은 10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정류장을 돌아다니거나, 서울교통공사에 끝없이 민원과 의견을 넣지 않아도 되는… 그저 기능 제안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접근성 개선에 관해 이야기하면 항상 비용 이야기가 따라붙습니다. 예를 들어 몸값이 비싼 개발자를 고용하거나, 외주를 주는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이죠. SI 업체10들은 버튼에 클릭 하나까지 돈을 받는다고 하니,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게 정부가 외주를 줘서 만든 사이트들의 품질은 어떤가요? 세계적인 전자 정부 선진국이라 하지만, 정부 웹사이트가 불편하고 낙후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루이틀 듣는 게 아닙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잘 운영하던 서비스가 사라지기도 하고, 그렇게 축적된 경험과 데이터도 보존되지 않고 사라집니다.
하지만 오픈소스라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다가 불편한 게 있다면? 개발자들은 고쳐 달라고 부탁만 하지 않습니다.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직접 고쳐서 수정 요청을 하면 되니까요. 여기서는 생산자와 소비자,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구분이 모호해집니다.
피통치자가 자신을 통치하는 체계라고 하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정의입니다.
물론 단체에도 후원금으로 돈을 받는 상근 활동가가 있듯이, 오픈소스에도 메인테이너11라 부르는 전업 관리자이자 최종 결정권자들도 있습니다. 대규모 오픈소스에는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와 조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무나 의견을 내고 이바지할 수 있다는 오픈소스의 정신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덕분에 오픈소스는 기업의 소프트웨어와 달리 매우 적은 비용으로 세계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니 한 공무원분께서 어렵다는 이야기를 주셨습니다. 정부에서 외주로 만든 프로그램은 그 기업에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오픈소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저작권의 역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노동자로서 기업에 임금을 받고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제가 만든 소프트웨어는 저의 소유일까요? 기업의 소유가 됩니다. 외주 업체는 시민의 세금으로 입찰받아서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것도 기업의 소유가 됩니다. 소유권이 시민을 위한 것인지 기업을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임팩트 투자사인 MYSC 대표님은 정권이 바뀌고 지원사업이 끊기면서, 문을 닫는 여러 사회적 기업과 단체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실패한 사례라고 해도 이런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으면 좋겠다고요.
영업을 종료하는 회사는 남은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는 절차를 밟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회사의 코드를 정부가 인수해서 오픈소스로 전환한다면 어떨까요? 과거 경제 위기로 회사가 위기에 빠졌을 때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 채권으로 회사를 인수해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때 사용했던 전술과 비슷한 것이기도 합니다. MYSC 대표님은 이에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소프트웨어는 계속 새로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기존 소프트웨어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새로 만드는 정부 소프트웨어는 오픈소스로 할 수는 없을까요?
최근에 영국 정부는 80억이 넘는 돈을 투자해서 AI 교육 사이트를 만드는 사업을 했는데요. 다국적 기업에 외주를 줬더니 링크 모음 정도의 형편 없는 결과물이 나오고, 접근성은 물론 사용성도 형편없어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사례가 있습니다. 이게 영국만의 이야기라고 하기 어려운 것이, 정부 소프트웨어를 보면 몇십억이 들어갔다는데 그 돈이 다 어디로 간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 하청에 재하청을 주고, 신입을 몇 년 차라고 경력을 위조하면서, 현장 개발자는 박봉에 저임금에 시달리는데 중간 업체들만 배를 불린다는 것도 이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오픈소스는 이러한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이 있습니다. 이 돈이 누구에게 어떤 근거로 쓰였는지 모든 걸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픈소스 단체들은 회계나 행정 절차가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스포올은 같이 회계를 공부하면서, 오픈소스 단체를 위한 회계와 행정 지원, Fiscal Sponsorship12에 관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개발자가 행정의 언어를 배우고, 행정도 오픈소스의 언어를 배운다면, 더 나은 협력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간담회에 원민경 장관님이 젊은 공무원분들을 참석시키신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오픈소스로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픈소스도 나름의 한계와 어려움, 과제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세상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왜 우리는 한 가지 선택지만 고집해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더 많은 실험이 필요합니다.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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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Web Accessibility: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웹사이트를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준과 설계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화면 낭독기로 웹을 읽을 수 있게 하거나, 마우스를 쓰지 못해도 키보드만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 - 오픈소스 / 자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Open Source / FOSS)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설계도)를 공개해, 누구나 보고, 수정하고, 개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방식입니다.
‘자유’란 단순히 무료라는 뜻이 아니라, 사용·수정·공유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 - 특정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고려해 설계된 기술을 의미합니다.
장애인, 고령자,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함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 - 장애인, 노인, 정보 취약계층 등 누구도 디지털 기술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지고 지원하자는 취지의 법입니다.
인터넷, 앱, 공공 서비스 접근성 문제가 핵심 대상입니다. ↩︎ - Civic Tech: 정부나 기업이 아닌 시민이 직접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드는 기술입니다.
교통, 환경, 행정, 인권 문제를 데이터와 기술로 개선하려는 활동을 말합니다. ↩︎ - Civic Hacking: ‘해킹’이라는 말이 불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스템의 문제를 시민이 창의적으로 고쳐보는 활동을 의미합니다.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지도, 서비스, 도구를 만드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 - 자유 오픈소스 연합 (FOSS for all)
자유 오픈소스의 가치를 사회적 약자, 모두의 권리와 연결하려는 단체 및 운동입니다.
기술을 일부 전문가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공 자산으로 보자는 관점입니다. ↩︎ - Web Accessibility: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웹사이트를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준과 설계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화면 낭독기로 웹을 읽을 수 있게 하거나, 마우스를 쓰지 못해도 키보드만으로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 - 이미지를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이미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글로 설명해 주는 텍스트입니다.
예: “검색 버튼”, “지하철 환승 안내 지도” 등 ↩︎ - 시스템 통합 업체: 정부나 기업의 IT 시스템을 외주로 설계·개발·운영해주는 회사입니다.
공공 IT 사업에서 매우 흔하지만, 비용 대비 품질 문제가 자주 지적됩니다. ↩︎ - 오픈소스 메인테이너 (Maintainer)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관리·조정하는 책임자입니다.
누구나 기여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 반영 여부를 판단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 - 비영리·오픈소스 단체가 회계·법인·행정 능력이 부족할 때,
다른 기관이 이를 대신 맡아 지원해주는 제도입니다.
기술 단체가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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