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 정강수
지난 2월 15일, 한국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와 한국녹색당 유럽당원모임 ‘그린페미(그페미)’ 주최로 논문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피해자를 위한 디지털증거 프레임워크1 연구(DEF-IPV)〉의 저자 조경숙 님을 모시고 가해자의 감시와 통제 속에서도 피해자가 안전하게 증거를 수집·보존할 수 있는 기술적 대안에 관해 이야기 듣는 자리를 마련했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이 좌담회의 내용을, 후기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좌담회는 디지털 기술은 폭력의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강력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자리였습니다. 일반적인 폭력 사례와 달리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은 법적 조치를 위한 증거 수집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메시지나 녹음, 녹화, 사진 촬영 등 디지털 기기를 통한 정보 수집이 친밀한 관계에서는 계정 공유나 기기 접근 권한 해제를 통해 손쉽게 가해자에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쉽게 “증거를 모아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사진 한 장, 녹음 파일 하나가 발각되는 순간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조경숙 님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과 기록을 동시에 보장하는 기술적 프레임워크를 제안했습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 앱처럼 보이지만 특정 입력을 통해서만 증거 수집 기능이 활성화되는 위장된 인터페이스2를 적용하고, 수집된 데이터는 일반 이미지 파일 등에 스테가노그래피(디지털 이미지나 오디오 파일 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숨겨진 데이터를 삽입하는 기술)를 사용해 숨기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전체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해자는 위장 앱을 통해 은밀하게 증거를 찍거나 업로드합니다.
- 업로드된 데이터는 먼저 클라이언트(피해자 기기)에서 암호화된 뒤 서버로 전송됩니다.
- 서버는 이 암호화된 데이터를 받아 스테가노그래피 기법으로 ‘커버 이미지’에 숨겨 저장합니다.
- 피해자가 안전할 때 다시 비밀번호를 입력해 파일을 내려받고, 기기에서 암호를 풀어 원본 증거를 복원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앱 사용 자체가 의심받지 않도록 하고, 파일의 존재와 내용 모두가 쉽게 드러나지 않도록 다층적으로 보호함으로써, 피해자가 감시 상황 속에서도 안전하게 증거를 확보하고 이후 법적·심리적 절차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입니다. 기술적인 부분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건 이렇게 수집된 정보가 법적 처벌을 위한 증거로도 사용되지만, 그 일이 실제로 있었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고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발표자인 조경숙님이 연구자이자 정책 제안자, 현장 활동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부처에 의사를 타진했지만 아직 한국에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에 관한 법률이 마련되지 않아(가정폭력이나 스토킹 처벌법은 존재하지만) 예산을 편성하거나 정책을 마련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기술 개발이 정책의 영역을 포괄해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앞으로의 디지털 사회에는 기술이 얼마나 빠르고 똑똑한지가 아닌, 취약한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 시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래에는 좌담회에 참여해 주신 분들이 남긴 다른 후기들입니다.
후기1
오늘 발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통한 실제 사례들도, 기술적인 부분도 저에게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관련 범죄의 나이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것과 청소년 연구 관련 관심 공유해 주신 것도 감사해요. 기술이 발전하고 그만큼 범죄도 경악할 만큼 고도화/음지화되는 걸 보면서 무기력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경숙 님 연구처럼 그에 대항하는 기술 이야기를 들으니, 힘이 나고, 관련 주제에 더 관심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후기2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피해자를 위한 기술: 디지털 증거의 가능성. 솔직히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무슨 내용일지 감도 안 잡혔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였고, 기술은 들어도 100퍼센트 잘 이해를 못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요즈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강연이나 토론회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경숙 님이 쓰신 석사 연구 주제에 대한 발표였다. 범죄 연구와 관련된 공부를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친밀한 관계 내의 폭력에서 피해자가 어떻게 증거를 수집할 수 있는지 서버를 구축하셨다고 한다. 연인, 가족 내 폭력은 통제가 크게 발생할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는 피해자의 핸드폰을 통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 있다(그루밍 범죄도 마찬가지). 피해자가 어떤 사진을 찍었으며, 누구와 방금 통화하는지도 알고 있다면, 피해자는 어떻게 증거를 수집할 수 있을까? Bright sky나 no stalk와 같이 직접적으로 증거 수집에 도움이 되는 앱들도 있다고 한다. 경숙 님이 연구하신 기술은 사진을 덮어쓰는 기술이라서, 해당 사진이 있더라도 암호가 없으면 실제로 피해 증거로 모으는 사진을 가해자가 볼 수 없다. 하지만 덮어쓰는데 용량을 매우 많이 차지해서 클라우드3 용량 문제가 있다고 한다.
후기3
좌담회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경숙 선생님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폭력에 대응하려는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폭력이 애초에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 특히 청소년 대상으로 –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제도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을지, 개인적 레벨에서 보탬이 될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도 궁금해졌습니다. 또한 좌담회에 참여하신 다른 분들의 질문을 통해 조경숙 선생님의 연구 계기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 계기 없이 사명감만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연구일 거라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지만 이렇게 연구와 발표, 제안을 통해 폭력 피해자를 위해 행동하시는 모습에 감명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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