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 김태희
기술은 우리 사회에서 강력한 힘이다. 데이터, 소프트웨어, 통신은 얼마든지 나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 즉, 불공정한 권력 구조를 굳히고 인권을 유린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데 쓸 수 있다. 물론 좋은 용도로 사용 가능하다.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모든 사람을 위한 기회를 만들고 재난을 피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 책을 선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바친다.
데이터 중심 애플리케이션 설계, 마틴 클레프만, 위키북스, 2018
기술은 중립적이라는 말도 있지만, 저는 양면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단순히 기술은 좋게 쓰일 수도 있고, 나쁘게도 쓰일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좋은 일이 다르게 보면 나쁜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물리학과를 나와서 프로그래머로 살고 있습니다. 녹색당원으로 생태적인 삶을 생각하면서 고민이 들고는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로켓이나 비행기 같은 기술은 엄청난 연료를 소모하고, 전쟁 무기로 쓰이기도 하며, 공항과 로켓 발사대를 만들기 위해 주민의 터전과 자연을 밀어내버리기도 합니다.1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술을 거부해야 할까요? 흔히 생태주의는 원시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는 편견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편견에 부합하게도 저는 평생 제주도는 2번 가본 적 있어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은 없습니다. 채식을 하려 노력하고, 불꽃놀이를 보지 않고, 이 뉴스레터도 AI가 아니라 손으로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술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서 ‘생태적인 기술’을 고민할 수는 없을까요? 노동자를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술은 없을까요?
물론 이런 “좋은 기술”이라는 말은 손쉽게 성장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논리로 변하기도 합니다. 최근에 AI에 푹 빠지고 주식을 하는 제 지인이 “AI가 에너지와 불평등,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말하던 게 생각납니다. 최근에 SK 그룹의 최태원 회장은 AI 환경연구소를 만들어 하이닉스는 물론 1700개의 협력사가 “온실가스 감축, 에너지 절감, 저탄소 공정 도입”을 지휘하고 “AI 기술이 녹색전환의 속도를 높이고, 녹색전환이 다시 AI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하기도 했죠.2 최근에는 재생에너지로 돌아가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며, 수익금으로 나무를 심는다는 친환경 AI라는 EcoGPT도 등장했습니다.3
하지만 “효율적인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제본스의 역설이 말하듯이 효율이 높아지고 가격이 떨어지면, 총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4 생태적 한계를 넘어서고 노동자는 대체되며, 부와 권력은 집중되겠지요. 태양광을 이용한 그린 데이터센터로 K-GX를 한다거나5, 청년을 위한 AI 부트캠프와 일경험 지원 사업이 있으면 해결될 일은 아닐 것입니다.6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안적인 기술은 무엇이 달라야 할까요?
자율주행 AI 자동차라는 조작적인 제도
저는 프로그래머이고 여전히 코드를 직접 읽고 손으로 코딩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실업자이기도 한 저는 최근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는데요. 최근에 한 면접관은 저에게 “이제 사람은 코딩을 하면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이 드신 비유는 자율주행차였습니다. 인간은 멈추기도 하고 속도가 일정하지도 않고 변덕스럽습니다. 그런데 자율주행차는 공장처럼 일정합니다. 그래서 도로에 사람이 운전하는 걸 금지하고 “AI 자율주행차만 운전하게 하면 교통 정체도 없고 시속 500 킬로미터로 달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장 조사부터 기획, 디자인, 개발, 테스트, 마케팅까지 AI가 다 하는 “AI 네이티브 조직”이 되어야 10배 빠른 속도로 생산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이야기였죠.
이게 맞는 말일까요? 프로그래밍도 그렇지만, 삶의 많은 기술은 그저 기술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교통도 그렇고, AI 같은 기술은 모두 고도로 사회적인 계획과 정치로 만들어내는 제도입니다.

책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쓴 이반 일리치는 이러한 제도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조작적인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공생적인 제도입니다.7 조작적인 제도는 인간을 수동적인 소비자로 만들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도가 규정하고 선전하고 세뇌 시킵니다. 반면에 공생적인 제도에서는 사람들은 목적을 스스로 정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자가용과 자율주행차는 언뜻 보면 자유로워 보입니다. 버스 놓칠까 걱정 없고, 장시간 운전에서 해방된다는 거죠. 사회적으로는 어떨까요? 자동차로 출근하는 게 당연해지면서, 회사 근처 집 값은 비싸집니다. 회사에서 멀지만 집값이 저렴한 교외로 밀려나면서 출퇴근 시간은 점점 길어지게 됩니다. 도로와 주차장을 위해 공공 공간이 부족해지고요. 길이 막히면서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더 불편해집니다. 이러한 혼잡 비용은 다른 사람들에게 외부효과로 전가됩니다.8 한 교통 연구자는 SNS에서 이 내용을 소개하며 “사실 승용차 끌고 나온 사람들은 버스타는 사람들한테 돈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하시더군요.
이반 일리치는 이렇듯 조작적인 제도는 “역생산성”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습니다.
AI도 그렇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AI로 모든 일을 하면 생산력이 늘어나고 모두가 행복해질까요? 제가 회사에 다닐 때 개발자 1인당 AI 비용이 월 100만 원이 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비용만 문제가 아닙니다. AI가 만든 코드에는 더 많은 에러가 나고, 품질이 떨어지고요. 이를 검증하기 위한 테스트나 도구에 또 비용이 들어갑니다.
한편 지도 앱이 이상한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AI가 이상하게 일을 해도 고치고 통제하기도 어렵습니다. 최근에 삼성의 AI 냉장고가 업데이트 직후 고장 나면서 추석에 제사 음식이 다 썩어 버리는 사건이 있었는데요.9 AI가 데이터베이스를 삭제한다거나. 은행이 AI 해커들에게 뚫리는 등의 사고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AI 회사들은 해킹을 방어하는 AI 솔루션을 판매하고요.
결국 이러한 조작적 제도는 자유를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의 비용은 커지고, 생산성과 효율은 떨어지게 됩니다. 사회의 공공재는 사유화되고, 기술과 제도는 “근본적 독점”으로 이어져 우리의 자율성은 사라지고 차를 사고, AI로 일하기를 강요 받게 됩니다. 사람이 운전하는 걸 금지하겠다고 하지요. 이는 자율주행 전기차 같은 “친환경적인” 자가용이라 해도 달라질 게 없습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생활이 시속 500킬로미터 자율주행 고속도로로 대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생활로 바뀌는 일이 가능한지. AI로 수십만 줄의 코드를 생산해내는 게 좋은지도 모르겠지만요!
버스와 기차, 자전거와 걷기라는 공생공락의 기술
그러면 사람들을 자유롭고 협력할 수 있게 능력을 ‘증강’해주는 기술은 무엇이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이미 인간이 있으면서도 빠르고 친환경적인 교통수단이 있습니다. 바로 버스와 기차, 그리고 자전거와 사람의 두 다리입니다.

걷기는 자유롭습니다.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도 있고, 걷고 달리면서 건강도 좋아집니다.10 저는 예전에 회사까지 3킬로미터 거리에 살면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갑자기 길이 막히거나 하지도 않고 행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더 먼 학교나 도서관에 갈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자전거는 AI 자동차와 달리 쉽게 고칠 수 있고, 수리하는 법을 직접 배울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이반 일리치의 한국어판 책 제목처럼,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올지 모르겠습니다.
더 멀리 이동할 때에는 버스나 지하철, 지역에 세미나나 토론회를 갈 때에는 철도나 광역 버스를 이용합니다. 버스와 기차가 빠른 이유는 AI가 운전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버스 전용 차로나 철도를 통해서 방해 없이 다닐 수 있고, 안정적인 신호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차를 소유하는 것과 달리 유지비도 거의 들지 않고요. 탄소도 거의 배출하지 않지요. 가능하면 인터넷으로 온라인 회의를 자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철도나 버스 역시 민주적으로 통제되지 못한다면 비용이 오르고, 배차 간격이 길어지며, 이용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는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공유 경제라면서 사기업의 값비싼 전기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가 길거리를 점령하며 이익은 사유화되고요. 매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2시간 씩 서울로 출퇴근하는 삶은 자가용과 마찬가지로 자발적인 게 아니라 강요당하는 것이고,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대전 녹색당이 공공 자전거 타슈 예산을 요구하고, 서울 녹색당이 사모펀드에 넘어간 시내버스를 공공이 인수하라고 운동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일 것입니다.
대체가 아니라 증강하는 프로그램
프로그램이나 AI도 그렇습니다. 자유/오픈소스 프로그램과 인터넷은 다양한 사람에게 어떤 면에서는 자유를 열어주었습니다. 그저 사람이 프로그램에게 일을 맡긴 것이 아닙니다. HCI(사람과 컴퓨터의 상호작용)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 증강(IA)”과 “인공 지능(AI)”를 구분했습니다. 저는 이 개념을 인간 중심 디자인을 말하는 디자이너이나 인지 심리학자인 도널드 노먼의 책에서 읽었는데요.11

인공지능(AI)은 흔히 인간의 작업을 기계가 대신 수행하는 걸 목표로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은 사람이 일을 시키기만 하고 감독자가 됩니다.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사람은 이 작업 과정에서 배제됩니다. 지금의 AI 사용이 딱 그렇지요.
하지만 하이퍼링크나 GUI, 엑셀 수식, 컴퓨터 그래픽 소프트웨어처럼 IA(Intelligence Augmentation) 그러니까 사람을 증강하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마치 붓이나 시각장애인의 지팡이 같은 도구가 사람의 손의 능력을 ‘확장’하는 것처럼요. 화면 속에 그래픽으로 불꽃을 만들고, 링크를 클릭하며 정보의 바다를 탐험하며, 이렇게 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의 뉴스레터를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런 증강하는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투명하게 설명하고 의사소통하고 이해가능하게 해줍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이해할 수도 없는 AI와 달리 말이죠. 인간 중심의 디자인이라 하지만, 인간 역시 기계와 “공생”하고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검색하는 능력”처럼 전에 없던 능력이 생겨나기도 하고요.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것이죠.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방식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역생산성을 생각하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업무에 AI를 사용하지만, AI가 코딩을 다 하게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AI가 쓰게 할 도구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요. 거꾸로 제가 쓸 도구를 AI에게 만들어 달라 하기도 합니다. AI와 대화하면서 AI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거꾸로 AI에게 배우기도 합니다. 여전히 많은 코드를 손으로 짜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최근에는 디자인 공부를 시작해서, 디자인 책을 읽고, 삶 속에서 다양한 디자인을 보고, 직접 디자인 툴을 써서 웹자보를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AI에 월 1만 원을 쓰면서도, 수십만 원을 넘게 AI 비용으로 쓰는 동료 분들보다 5배 많은 코드를 만들고 5배 많은 에러를 잡아서 회사에서 상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최근에는 효율적이고 저렴한 오픈소스 모델만 사용하면서 AI 구독료로 한 푼도 내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저는 이게 제가 유능해서라고 보지 않습니다. 여러 학습에 대한 연구들은 AI에게 사고를 외주화했을 때 일은 처리해도 학습은 되지 않고요. 특히 문제가 생길 때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져, 이를 고치는데 시간이 훨씬 더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반면에 AI를 쓰더라도 질문하고 설명을 요구하고 생각하면 일을 더 빨리 끝내면서도 더 깊은 이해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죠.12 『함께 자라기』를 쓴 김창준 코치 같은 유명한 분도 이러한 주제로 최근에 『야생 학습』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증강하는 기술이 만드는 노동자의 주권
그럼에도 세상은 돌고 돌았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인터넷은 빅테크 기업과 자본에 점령당하여 전자상거래와 광고, 가짜 뉴스가 인터넷을 지배했습니다. 인터넷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것으로 드러났죠.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문자 그대로 멍청하게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AI 기업들이 가세했죠. 이제 인터넷에 올라온 글의 절반 이상이 AI가 작성한 글이라 합니다. 앞서 살펴본 자율주행차 비유처럼 인간 노동자를 몰아내고 수백 개의 에이전트가 알아서 돌아가게 하며 물과 전기를 펑펑 쓰는 게 효율성이라 말합니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세모글루는 책 『권력과 진보』에서 이러한 증강과 대체의 구분이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인원을 감축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해도 기존에 배운 기술은 쓸모가 없어지게 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산업 예비군으로 전락하고요. 부는 자본가들에게 더 집중되게 됩니다.
반면에 “기계와 알고리즘을 인간의 역량을 보완하고 사람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발달”시킨다면 “혁신이 촉진”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술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복원”합니다. 자본가는 마치 새로운 일자리가 저절로 생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지에 따라 일자리는 대체될 수도, 복원될 수도 있는 것이죠. 자본가들이 일자리를 복원하기보다는 대체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기만 원했고, 결국 증강하는 기술은 발전하지 못한 채 제조업 노동자의 처우가 나빠져왔다는 것을 아세모글루는 데이터로 보여줍니다.
그는 AI에게 일을 맡기고, 기본소득을 받게 하자는 주장을 비판하는데. “누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지와 테크놀로지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문제시하지 않고 “패배주의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유명 빅테크 수장들이 기본소득의 옹호자라는 걸 생각하면 놀랍지도 않습니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나면 권력을 쥔 빅테크 수장들이 과연 약속한 “보편적 고소득”을 지급할지 의문이죠.
그렇다면 증강하는 기술을 만드느냐, 대체하는 기술을 만드느냐는 결국 권력의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자본의 권력에 맞서는 커먼즈로서의 기술

마르크스주의 학자 사이토 고헤이가 쓴『제로에서 시작하는 자본론』3장의 제목은 “혁신이 ‘별것 아닌 일을 낳다’”입니다. 이 장에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하면, 기술의 발전이 자본가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며. 노동자들이 분업 속에 구상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소외 당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추상적인 용어들이 나왔으니 구체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어떤 이들은 AI 덕분에 노동자들이 단순 노동에서 해방되고 모두가 ‘관리자’가 되어 창조적인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AI에게 이거저거 “해줘!”하고 “딸깍”하는 것이 과연 구상이라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생산물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모르고 소외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전문성은 AI를 학습시키고 AI를 위한 ‘스킬’을 만드는 데 필요한 데이터가 되어 추출되지요. 자본가는 청년을 고용하지 않고, 소수의 경력직만으로, 심지어 노동자 없이 혼자서도 회사를 굴릴 수 있게 됩니다. AI에 노출된 직업에서 청년 실업이 심각해진 것은 그런 이유겠지요.13
AI 덕분에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대통령이 약속한 주4일제로 근로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14 설령 근로시간이 줄어든다 해도, 회사에 다니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부가 말하듯이 청년이여 AI 창업을 해라! 하고 자본가가 되기 위한 경쟁에 뛰어든다고 우리가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닌 것이죠. AI 때문에 채용되지 못한 청년들은 온갖 열악한 일자리에 뛰어들 수 밖에 없어지고요. 부유한 이들의 권력은 더 커지게 됩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그가 주장하는 것은 “탈성장 코뮤니즘”입니다. 우리가 공산주의 하면 상상하는 엘리트가 주도하는 국가 계획 경제가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래에서부터 시작하는 운동입니다. 원래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라는 관념이기도 하죠. 노동자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결정하여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극복하고요. 기술을 통해 능력의 차이를 보완합니다. 노동시간은 줄이고, 작업을 평등하게 실행할 수 있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피지컬 AI에 대한 뉴스레터에서도 소개드린 것처럼, 조선소의 용접 노동자 분들은 로봇의 ‘조종사’가 되면서 여러 직업병에서 해방되었고, 성별에 무관하게 근력이 약한 사람도 제조업에서 일할 수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15 물론 이것이 자본을 위해 착취당하는 노동이 되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만. 기술을 통해 능력의 차이를 보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광고로 수익을 얻는 사기업의 플랫폼 공유 경제가 아니라, 공공이 운영하는 오픈소스 앱을 통해 시민들이 안 쓰는 물건을 나누고, 수리하고, 재사용하며,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장애인 접근성에 문제가 있으면 장애인들이 직접 코드와 디자인을 바꾸고 기여할 수도 있겠지요.16

사이토 고헤이 씨는 최근에 다른 이들과 함께 쓴『커먼즈의 자치론』같은 책에서 이러한 실제 사례를 통해 이러한 대안을 더 구체화하고 있기도 합니다. 녹색당의 공동대표인 이상현 님이 번역에 참여하시기도 했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에게 메뉴에 오른 선택지 중에서만 무언가를 고를 수 있는, 낮은 수준의 자유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버이츠 덕분에 자취의 번거로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로봇청소기로 청소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지만, 사실은 자유로워졌다는 기분이 들 뿐입니다. 기실 우리는 점점 수동적인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스스로 요리도, 청소도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 자치란 누군가가 정한 기존의 (종종 억압적인) 구조에 복종하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상의하면서 그 구조를 스스로의 것으로 파악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구조를 바꿀 방법을 궁리하며 재구성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꿔 말하면, 기존 구조 내부에서 단순히 ‘수혜자’에 불과했던 상태에서 그 구조에 스스로 관여하는 ‘당사자’가 되고, 그 ‘당사자’라는 상태를 유지해가는 부단한 과정을 ‘자치’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인간과 자연을 소외시키고 대체하는 조작적인 제도가 아니라, 우리를 증강하며 자연, 기술과 인간이 함께 공생공락하기 위한 제도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 글에서 소개한 여러 이야기는 그런 고민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직은 막연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계속 대안적인 기술을 상상하고, 실험하며, 공유하고, 현실에서 답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날이 오면 우리는 그저 자본에 포섭된 논리가 아니라, 진정 생태적이고 인간과 자연 모두를 위한 기술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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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 2026 전국 우주평화 토론회 : 누가 죽음으로 내몰리며, 누가 독식하는가? ↩︎
- SK하이닉스, ‘AI 환경연구소’ 신설…반도체 녹색전환 주도한다, 매일경제, 2026-10-08, 한지연 기자 ↩︎
- https://ecogpt.com/about ↩︎
- 효율이 좋아지는데 왜 자원 소비는 더 늘어날까? ― ‘제본스의 역설’과 AI 시대의 탈성장, 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 2025-12-07 ↩︎
- 탄소 감축을 넘어 신성장동력으로, 정부 1,000조원 투자로 K-GX 본격 가동, 기후에너지환경부, 2026-10-07 ↩︎
- 하GPT에게 묻다 – AI 시대, 내 일자리 괜찮을까?, 하정우TV, 2026-10-27 ↩︎
- 학교 없는 사회, 사월의 책, 2023-02-01, 이반 일리치 ↩︎
- 도시교통수단별 교통비용 비교 연구, 교통연구 30권 3호, 2023, 이장호·정경호 ↩︎
- 추석 음식 다 상한다…삼성 AI 냉장고 ‘먹통’에 소비자 발 동동, 매일경제, 2026-09-23, 김나연 기자 ↩︎
-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민음사, 2022-12-09, 전현우 ↩︎
- 도널드 노먼의 인터랙션 디자인 특강, 유엑스리뷰, 2022-09-20, 도널드 A 노먼 ↩︎
- How AI Impacts Skill Formation, Judy Hanwen Shen, Alex Tamkin, 2026-08-24 ↩︎
- [제2026-27호] 청년고용 부진 및 정책 과제, 한국은행, 2026-10-26, 황수진, 정강희, 정성엽 ↩︎
- https://x.com/Jaemyung_Lee/status/2115244334979371066 ↩︎
- 피지컬 AI의 주인은 누구인가, 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 2026-09-07, 김태희 ↩︎
- 접근성과 오픈소스의 민주주의 – 성평등가족부 포용기술 전문가 간담회 후기, 녹색당 과학기술위원회, 2026-02-01 김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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